Lined Notebook

노새 두 마리에게, 그 골목은 몹시도 가팔랐다

by 가람빛

1970년대 서울의 어느 신흥 마을에 노새를 생계 수단으로 연탄 배달을 하는 한 가족이 있었다. 그곳은 골목 하나를 경계로 원래의 판잣집으로 이루어진 구동네와 문화주택이라며 2층짜리 슬래브 집들로 새로 지어진 새 동네로 나누어져 있다. 그 가족의 집은 구동네의 어딘가에 있다.

아버지는 노새에게 마차를 끌게 하고 그 마차에 공장에서 배달하라는 만큼 연탄을 싣고 배달하러 다니곤 했는데 주인공인 ‘나’ 또한 아버지가 배달을 나갈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어느 겨울날 여느 때처럼 연탄 400장을 마차에 싣고는 새 동네로 배달하는데 다른 때 같으면 힘 안 들이고 단번에 올라설 만한 고개인데도 그날따라 중턱에서 걸리더니 그 이상 오르질 못했다. 바닥에는 살얼음이 한 겹 살짝 깔려있어서 마차 뒤를 미는 ‘나’도 오히려 미끄러져 나갔으며 노새 역시 살얼음에 발자국만 애써 긁어놓을 뿐 도저히 오르지를 못했다. 사람들이 몇 명 지나갔지만 모두 쳐다보기만 할 뿐 도와주지는 않았다.

결국, 노새가 지친 탓에 연탄 더미는 무너지고 흘러내리는 마차에 질질 끌려가며 허우적대던 노새는 벌떡 일어나더니 순간적으로 도망쳐버렸다. 아버지와 ‘나’는 노새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저 꿈속에서 노새가 시장을 휘젓고 난장판으로 만들고선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나간 노새를 봤을 뿐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찾아 나섰지만, 그저 목적지 없이 떠도는 것에 불과했다. 마치 길 잃은 나그네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가 결국 도착한 동물원에서 얼룩말을 보고서는 아버지의 얼굴이 노새와 닮았다고 생각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새가 매번 무거운 연탄 마차를 짊어지고서는 가파른 골목을 오르듯이, 연탄 가루가 온몸에 앉아 속살까지 파고들었듯이 아버지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늦은 밤에 동물원을 나온 부자는 집을 향해 가던 중 대폿집에 들어가더니만 아버지는 ‘나’에게 안주를 밀어놓고 술만 거푸 마셔댔다. 그러더니 아버지는

“이제부터 내가 노새다. 이제부터 내가 노새가 되어야지 별수 있니? 그놈이 도망쳤으니까. 이제 내가 노새가 되는 거지.”

 

하고서는 노새처럼 히힝 웃어댔다. ‘나’도 같이 웃었다. 즐겁게 집을 향해서 걸어오던 부자의 즐거운 생각은 집에 당도했을 때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노새가 사람을 다치게 하고 가게 물건들을 박살 내는 바람에 순경들이 집에 찾아와 아버지를 잡아가야 한다고 이르고 갔다는 것이다. 술이 깬 아버지는 한동안 멀뚱멀뚱 서 있다가 아무 말 없이 쓰적쓰적 어두운 골목길을 나섰다. '나’는 집을 나가는 또 한 마리의 노새를 보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그러고선 어차피 노새에게는 비행기가 붕붕거리고, 헬리콥터가 앵앵거리고, 자동차가 빵빵거리고, 자전거가 쌩쌩거리는 도시에서는 발붙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마리의 노새를 찾아 캄캄한 골목길을 향해 마구 뛰었다.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던 노새가 힘겨워할 때 그들은 무관심했다. 누구 하나 부자를 돕겠다고 마차를 밀어주지 않았으며 그저 구경거리로만 여겼었다. 마차를 벗고 도망친 노새를 부자가 쫓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무관심했다. 누구 하나 노새가 도망친 방향을 일러주지 않았으며 그저 구경만 했었다. 만약에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와서 마차의 뒤를 밀어줬다면 과연 어땠을까? 노새를 뒤쫓는 부자를 보고 노새가 도망친 방향을 일러줬으면 어땠을까? 그랬어도 노새가 그들의 가게 물건들을 박살 내고 그들을 다치게 했을까? 이 작품에서는 구동네와 새 동네의 주민들 간의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자주 묘사되는 것 같다. 구동네 아이들이 새 동네까지 와서 놀더라도 구동네 아이들과 새 동네 아이들은 끼리끼리 무리지어 놀 뿐이었으며 가파른 고개를 오를 때에도, 노새 두 마리가 그 가파른 고개로 인해서 곤란한 듯한 모습을 보일 때에도 그들은 그저 무관심으로 일괄했으며 가파른 고개를 빠져나와 도망치는 노새를 보고도 별꼴이라며 단순한 구경거리로만 압축시켰다. 한 가족의 내일이 걸린 문제인데 말이다.

비행기가 붕붕거리고, 헬리콥터가 앵앵거리고, 자동차가 빵빵거리고, 자전거가 쌩쌩거리고, 도시가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노새에게는 그저 적응하기 벅찬 가파른 골목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새 동네의 사람들에게 노새는 그저 구경거리로만 여겨질 뿐이다. 노새는 지금 당장이라도 짊어진 마차의 고단한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럴 때 새 동네 사람들이 자빠지면 자빠지고 아니면 아닌 구경거리가 아닌 한 가족의 가장으로 여기며 관심을 가지고 마차를 밀어준다면 그 가파른 골목길이 조금이라도 더 완만해지진 않을까. 그 고단한 무게의 연탄 마차가 조금이라도 더 가벼워지진 않을까.

노새에게도, 과연, 아름다운 골목이었을까? 또는, 오를 수 있는 골목이었을까?

그 골목은 몹시도 가팔랐다. 노새가 연탄 마차를 홀로 짊어지기에는.


중학 교과서 소설 1

저자
김혜니, 김학선, 김인봉, 호승희, 김은자 지음
출판사
타임기획 | 2013-01-02 출간
카테고리
중/고학습
책소개
중학교 국어 교과서가 새롭게 단장되었습니다. “2013학년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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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zanthia/8070354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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